[소개]



마흔번째 이야기[2016봄] 고작 인턴? 무려 인턴! --- 김한별 편집위원 2016/03/02 10:00 by 교지l한림l


고작 인턴? 무려 인턴!

김한별 편집위원

(‘2016 Kidult & Hobby Expo’ 취재현장)

대다수 청년들이그렇지만, 우리는 꿈을 강요 받는다. 그리고 대다수의 청년들이 그렇듯이, 우리는 내가 뭘 잘하는지, 무엇을 꿈으로 삼아야 하는지 모른다. “너는 나중에 뭐가 하고 싶니?”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아무런 목표도 없이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인간 취급을 받곤 한다. 나또한 그랬다. 그래도 나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었다. 추상적인목표조차 없는 친구들에 비해, 적어도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글쟁이로 살고 싶었다.

그러던 중, ‘홍보개론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OT때 교수님께서 이런 말을 해주셨다. 뭔가 엉뚱하거나 재치 있는 생각을 잘해낸다면 광고쪽을 추천하고, 꼼꼼하고글을 잘 쓰면 홍보쪽을 추천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꼼꼼한 건 아니지만, 그런 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글을 잘 쓰면이라는 말만 귀에 들어왔다. 그 말은 오랫동안 방황했던 나에게 기적같이 발견한 표지판 같았다. 그래서나는 홍보분야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결국 홍보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목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간신히 꿈을 구체화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 빠져있었다. 비록 홍보 전문가가 되고 싶긴 하지만, 아직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를뿐더러, 내가 그 분야에재능이 있는지 조차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확신이 필요했다. ‘내가계속해서 이 꿈을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도 되는가?’에 대한 확신. 방황만하고 있기엔 더 이상 나는 어리지 않았고,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었다. 가장 확실한 확신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직접 그 분야에서일해보고 경험해보는 것. 그렇게 나는 2015 동계현장실습을지원했고, 두 달 동안 에이빙뉴스의 마케팅팀 인턴으로 살게 되었다.

(Aving Studio 키친)

 

12 21. 나는 분명회사로 출근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다름아닌 스튜디오였다. 칸막이와 책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명기기와 커다란 원탁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평범한 회사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회사라기 보다는 모임장소 같은 느낌이었다. 직원들도 모두 편한 복장을 입고 있었고, 부장님께서는 두건을 쓰고계셨다. 심지어 사원들 중 두 명은 19살로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다. 이쯤되니내가 맞게 찾아온건지 걱정됐다.

그래도 그때까지만해도 걱정보다는 설렘이 앞섰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처음엔 마냥 회사라는 곳이 신기했다. 하지만 그 설렘은 출근한지이틀 만에 산산이 부서졌다. 오후 3, 나는 사수로부터 급히 처리해야 할 업무를 받게 되었다. 무려 ‘[긴급!!]’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그 일은 무조건 당일 내로 처리해야했는데, 그것은 무려 연말결산보고서를 만들어 클라이언트에게 보내는 일이었다.

어떻게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설명만 한 40분을 들었던 것 같다. 나는첫 미션인 만큼 제대로 해내보이겠다는 의지에 가득 차있었다. 까먹을까봐 녹음도 하고 열심히 필기도 했는데, 사수가 설명해주는것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의지는 걱정이 되었고, 나중엔 걱정을 넘어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되었다. 내가 만들어야 하는 보고서는 PPT 100장이 넘었고, 보고서를작성하는 데 참고해야 하는 데이터 파일만 천장이 넘었다. 엄청난 자료 속에서 올해 연말 보고서에 필요한정보만 딱딱 뽑아서 사용해야 한다. 미션을 설명해주자 마자 내 사수는 외근하러 나가버렸고, 나는 제대로 물어볼 사람도 없이 이 엄청난 미션을 홀로 감당하게 되었다.

그래도 처음엔할 만했다. 아직 사수가 설명해준 게 머릿속에 남아있었으니까. 하지만일은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복잡해졌고, 내 머릿속의 기억도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6시가 되어 다른 인턴들은 퇴근하고, 나를 도와주겠다는 인턴 한명과 함께 사무실에 덩그러니 남았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인턴이 도와준다면서 어떻게 하는지 알려달라는데, 정작 나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도와달라 하고 싶어도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가 없어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가장 최악인 건 내가 파일을 완성해서 다른 사수에게 넘기면, 그사수가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업체에 넘겨야 했는데 내가 끝내질 못하니 다른 사수도 야근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냥 울고 싶었다. 화장실에 가서 모든 걸 놓아버리고 엉엉 울고 싶었다. ‘그냥 이대로집에 가버릴까는 생각도 들었지만, 설명을 들은 사람은 오직 나 하나였기에 나만이 이 일을 끝낼 수 있었다. ‘난이제 막 기말고사를 끝마치고 온 대학생에 불과한데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런 시련이 온 걸까. 원래 회사라는것이 이렇게 힘든 것일까?’ 너무 당황하니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아예 생각나지 않았다. 무슨 정신으로 일을 끝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끝내고 도망치듯 나오니 8시반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지하철 안에서 눈물이 났다. 내가 인턴을 시작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게 바로 이거였다. 나한테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 내가 생각한 나의오피스 라이프는 멋진 커리어우먼, 그 자체였다. 무엇이든척척 잘해내고 동료들에게도 인정받는 그런 멋진 여자. 하지만 나는 첫 미션부터 아주 제대로 말아먹었고, 일이 어떻게 되든말든 그냥 도망쳐버렸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일이, 고작출근 이틀 만에 현실이 되었다.

(사수가 정리하라고 주고 간 명함 한박스)

 

환상이 깨지고나니 남는 건 현실뿐이었다. 이틀 만에 미션에 실패하고 야근을 해보니 취업이라는 것 자체가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고작 22,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인턴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제출했던 보고서에는 문제가 많았고, 그 뒷수습을하기 위해 다른 직원들이 새벽까지 야근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가슴 한 편이 쿵 하고 무너졌다. 더 슬픈 건, 내 사수는 내가 잘못했다고 해서 나를 혼내지 않았다. 그냥 나한테 관심조차 없었다. 악담보다 더 슬픈 것이 바로 무관심이었다. 그렇게 사수 중 한 명은 나를 만난 지 3일 만에 미국 출장을 갔고, 다른 사수는 나한테 책 한 권과 명함 한 박스를 DB화시키라는 말을남긴 채 휴가를 떠났다. 다녀온다는 인사조차 없이 내 사수들은 떠나버렸고, 나는 이주 동안 혼자 남아 3,000장이 넘는 명함을 정리해야 했다.

사수들이 떠나고혼자 남겨진 나는 미션에 실패한 나를 자책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사무실에 처음 보는 분이 들이닥쳤고 일하고 있던 인턴들을 한 자리로 부르셨다. 알고 보니 그분은 부장님으로 프리랜서처럼 가끔씩만 출근하시는 분이었다. 우리가인턴으로 있는 내내 매주 특강을 해주시곤 했는데, 처음 그 부장님을 만났을 때 우리에게 해주신 말이있었다.


여기에서 뭔가를 배우려고 하지 말고, 그냥 느껴. 회사 자체를, 회사분위기를, 사회라는 공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매주 진행됐던 김기홍 부장님 특강)


그 이야기를 듣고나니까 뭔가 머릿속이 뎅~하고 울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계속해서뭔가를 배워서 얻어가야만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있었다. 그래서 늘 마음이 조급했고, 단순 노동업무는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부장님의 말씀을 들으니내가 너무 욕심이 앞섰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회사라는 곳을 경험하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에겐큰 자산이 될 텐데, 나는 반드시 내가 엄청난 프로젝트를 맡아서 멋지게 해내야 하고 배워가야 한다고생각했다. 스스로 자조했던 것처럼 이제 막 기말고사를 마치고 온 대학생에 불과한 인턴인데, 너무 많은 것을 바랐고, 너무 나를 과소평가했다. 나는 아직 큰 프로젝트를 해낼수는 없지만, 그 프로젝트의 기반은 닦아놓을 수 있다. ‘그저느끼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드디어 내 마음속에도,인턴으로서의 삶에도 여유가 생겼다.

간신히 명함을정리하고 나니, 갑자기 나는 기자가 됐다. 소기업의 특징은팀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워낙 규모가 작고 인력이 부족해서, 어제는번역을 하다가 오늘은 마케팅을 하고, 내일은 기사를 쓴다. 좋게말하면 여러 가지 직무를 다양하게 체험해볼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일이 많고 전문성이 떨어진다. 마케팅 업무만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갑자기 기사라니한 번도 써보지 않았을뿐더러, 어떻게 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생전 글은 써 본적도 없다던 디자인팀 언니도 기사를 쓰게 되었으니까.

우리가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한 일은 간단했다. ‘CES’라는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3대 가전전시회가 있는데, 미국으로 취재를 간 기자들이 해당 회사 이름과 제품 사진을 올리면 구글링을 통해 정보를 찾아 한두 줄 정도로짧게 기사를 내는 것이었다.

정신없이 기사를쓰고 있다 보면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걸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괜히 기레기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내가 기사를 쓰면서 절실히 느꼈다. 내가잘 쓰고 싶어도 받은 할당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열심히 쓰면 그 일을 전부 끝낼 수 없다. 질보다는양을 늘려 포털에 많이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급하게 대충대충 빨리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당연히 오타가 발생하고, 잘못된 정보가 올라간다. 내가 직접 취재한 것도 아니고, 그냥 다른 기사에서 긁어온 정보도많으니까. 그렇게 기레기들을 욕했었는데, 정신없이 기사를쓰고 있다 보면 내가 바로 그 기레기가 돼있었다.

(‘2016 Kidult & Hobby Expo’ 취재기사)


CES기사를 쓰느라 정신없을 때, 나는 코엑스로 키덜트&하비 엑스포취재를나가게 되었다. 기사를 쓰는 것 자체에 염증을 느끼던 터라 그리 달갑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라고 하면 가야 하는게 인턴 아니겠는가. 노트북과 카메라를챙겨 전시장으로 가니 프레스 센터가 있었다. 아직 명함이 없던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명함 위에 찍찍 긋고우리 이름을 적어갔다. 차마 인턴이라고는 못하고, ‘명함이아직 안나왔어요~’라는 변명을 늘어놓자, 직원이 의심 가득한눈으로 프레스증을 내줬다.

근데 이상한 게이 프레증을 목에 걸자 왠지 내가 진짜 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원래는 티켓을 끊어야지만입장할 수 있지만, 프레스증을 목에 걸고 있으니 아무 제지 없이 전시장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사수한테 취재하는 법에 대해 간단하게 배우고, 자유롭게 취재를 하면서돌아다니다 보니 더욱 신이 났다.

일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2016 Kidult & Hobby Expo’ 프레스증)

 

전시장을 돌아다니는것도, 취재하러 왔다며 낯선 사람들에게 녹음기를 들이미는 것도, 모두나에겐 낯설고 신기한 일이었다. 살면서 기자라는 신분으로 프레스증을 목에 걸고, 취재를 다녀볼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다시 회사로 돌아와 내가 취재한 것을 다시 들으며 기사를 쓸 때, 나는 기사 쓰는 게 참 재밌다고 생각했다. 진짜 내가 취재한 기사. 내가 직접 취재했고, 직접 사진을 찍었으며, 직접 작성한 기사가 회사 메인에 올라갔다. CES 기사를 쓸 때는느낄 수 없던 희열이 올라왔다. 기사 맨 밑에 당당하게 박힌 김한별기자라는 문구를 보면 가슴이 설렜다. 그것은 회사에서 내힘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 드디어 나도 내 몫을 제대로 해냈다는 뿌듯함이었다.

CES 기사를 마무리하고 나니 어느덧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있었다. 한달이 지나고 나니 그제서야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가 눈에 보이고, 내가 어떤 식으로 일해야 하는지가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한 달만 인턴을 신청했다면, 뭔가이제 좀 잘해보려고 할 때 떠나야 해서 너무 아쉬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저 나는 일 못하는 인턴으로만 기억된 채 끝났겠지. 지난 한 달 동안 일을 못했던 만큼, 남은 한 달은 누구보다 멋지게해내고 싶었다.

그 이후로 나는계속해서 작은 일을 했다. 여전히 명함작업을 했고, 각 대학별산학협력처 담당자연락처를 조사해 DB화시켰으며, 한 주 내내 야근까지 하며 그토록 치를 떨었던 연말보고서를또다시 만들어야 했다. 비록 인턴들과 함께 치맥을 먹다가 다시 회사로 돌아와 11시까지 야근을 했지만, 몸은 지쳐도 예전처럼 일을 받는 것이 두렵거나짜증 나진 않았다. 이제 나도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알고, 적어도저번처럼 내 사수 두 명이 홀라당 사라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 스스로여유가 생겼을뿐더러, 회사에 있어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걱정은내가 처한 현실과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에 차이가 있을 때 생긴다. 그 현실과 이상향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걱정 역시 커진다. 그렇다면 걱정을 줄이는 방법 또한 간단하다. 내가처한 현실과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과의 차이를 줄이면 된다. 적당한 걱정은 사람을 자극하고 성장하게 하지만, 나처럼 과도한 걱정은 오히려 나 스스로를 갉아먹고 더 이상 일어설 수 없게 만든다.

인턴 초기에 나는내 자신을 고작 인턴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친구들은 오히려 인턴을 나가는 나를 부러워했다.

무려 인턴이라고.

그때 나는 느꼈다. 내가 가볍게 생각하는 이 일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나 자신을 고작 인턴이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나는 고작 인턴이 되는 것이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면 나는 무려 인턴이 된다. 내가하찮게 생각하는 이 일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아직도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번 인턴을 통해 계속해서 이쪽을 공부해도 재밌겠다라는 확신을 얻었다.

나는 이번에 인턴을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지금 미리 사회를 경험해보지 않고,훗날 진짜로 사회에 혼자 던져졌다면 매일 밤을 울며 지새웠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려인턴이 아닌가! 이미 사회에 나와 회사라는 조직도 경험해봤다. 미리예방주사를 맞았으니 진짜로 사회에 나갔을 때 충격이 덜하고 더 빨리 적응할 수 있겠지. 그것만으로도이미 성공적인 인턴 생활이다. 그러니 아직도 자신이 고작 인턴이라며 슬퍼하고 있다면, 슬퍼하지 마시길. 절대 한 번에 배부를 수 없고, 이제 우리는 첫술을 뜨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Aving 인턴 수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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